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나는 여러 해 전에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쓴 소책자 <모두스 비벤디(Liquid Times: Living in an Age of Uncertainty)>를 서점에서 산 적이 있다. ‘산 적이 있다’는 말은 ‘갖고는 있지만 읽지는 않았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는 관용어인데, 내가 종종 ‘어떤 책은 갖고만 있어도 지성인이다’라며 지적 허영을 서둘러 정당화하는 문장과 짝을 이루는 표현이다. 내 기억에는 국내에 양복 브랜드 명으로 쓰인 적이 있었다.
라틴어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는 생활방식(mode of life, way of life)이란 의미인데, 외교 용어로는 적대적인 국가간에 이견을 인정하면서 잠정적(provisional)으로 맺는 협정을 뜻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생활방식’이 ‘잠정협정’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은데,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특정한 생활방식이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기보다는 ‘타인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적절한 수준으로 타협된 협상의 산물’이자, 이제는 ‘익숙해진 불편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바우만의 책을 읽지 않고서 그의 논지를 마구 확장하는 것은 매우 실례되는 일이지만, 간단한 훑어보기만으로 파악한 그의 논지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고체가 아니라 액체처럼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는 것이고, 그 속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자질은 영구한 협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조건과 욕망 사이에서 절충과 타협을 이루며 만들어낸 잠정협정을 계속 갱신하며 사는 능력이란 결론일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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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쓴 책이, 세어 보니 다섯 권쯤 된다. 공저에 해당하는 것이 두 권쯤 되고, 여러 필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책은 몇 권 더 될 것이다.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문학 쪽이 아니라서 어색하고, 전업 작가로 사는 것도 아니라서, 글쓰기는 취미생활이라기에는 크고 직업이라고 보기엔 작은 위상을 내 삶에서 지니고 있다.
몇년 전 하던 일을 다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아무 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을 때였지만 제일 속 상했던 것이 글이 망가지고 있더라는 자각이었다. 책을 뒤적거리기는 하지만 읽히지가 않았고, 고작 일상생활의 기록을 남기는 일기를 쓰면서도 단어가 미끄러지고 문장이 뭉개졌다. 옛날 영국 유학하던 시절에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인데 수두에 걸려서 고열에 시달리다 기절한 일이 있었다. 열이 내리는데 일주일, 침대에서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는데 한 달이 걸렸다. 문제는 뇌가 한번 고열에 시달리고 나니 정상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안되던 영어는 단어부터 턱턱 막혔고, 전공분야의 익숙한 단어들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그때 절감했다. 이제부터 내가 쓰는 글은 예전처럼 반짝이지는 않겠구나. 가까스로 단어 하나 건져놓고, 겨우 문장 하나 만들어 놓고, 전후 문맥은 맞는지, 논지가 흐트러지지는 않는지를 정말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심정으로 암담함을 느껴가며 논문을 썼다. 스스로 느끼는 총기는 엄청 떨어졌지만, 바깥으로는 수습하며 사는 법을 배웠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글이 죽죽 나가는 경험을 한 적이 없지만, 결과물만 놓고 보면 단행본을 2년에 한 권 정도씩 써낸 것은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경주 생활 3년차에 접어든다. 그 사이에 나는 몇번 글을 써보려고 시도를 했다. 지인들에게 근황을 알리는 메일링 리스트를 운영해 보았는데, 힘이 딸렸다. 과거에 써두었던 글 몇 편을 보낸 것외에 새로운 글을 생산할 수 없었다. 머리 속에 떠다니던 소재들은 아직 글이 되지 못했고, 어떤 기획은 다시 들여다 보면 부적절했다. 내가 나의 상황 판단을 신뢰할 수 없으니 대중을 상정한 글쓰기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가장 오래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것은 톤을 정하는 문제였다. 어떤 때는 다 써놓은 원고를 처음부터 다 뒤집을 때도 있다. 호흡이 거칠고, 단어가 조율되지 않은 채 따로 노는 글을 내어놓는 것이 제일 힘든데, 결국 시간과 싸우다 타협을 하게 된다. 늘 내가 졌다. 그 감각이 돌아오기 전에는 글을 쓰기 어렵겠다 느꼈다.
올해 접어들면서 몇가지 마음의 정리를 했다. 몸이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있어서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 볼 엄두를 내게 되었다.
첫째, 뒤돌아보며 살기보다는 내다보며 살기로 했다. 사람마다 살아온 궤적이 있어서 그것을 이탈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고, 우여곡절이 많다. 때로 우리는 꼼짝없이 주어진 조건에 맞추어 사는 것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은 식물이 아니고 동물이다. 아니 식물조차도 상상보다 더 독특한 경로로 살아간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그간 꽉 막힌 벽에 머리를 쿵쿵 들이박는 듯한 행동을 해보기도 했고,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서바이벌을 하기도 했다. 가만히 있기 보다는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어차피 더 나빠질 수는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자각은 머리를 맑게 만든다. 나는 그쪽 방향으로 발을 내디뎌 보기로 했다.
둘째, 순간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경주 생활 기간 중에 친구가 되어준 이들이 몇 있다. 노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진심을 담아 성실하게 노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남에 노바디로 끼어서 섬바디가 되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매 순간을 정직하게 맞대면 하기 어렵다. 미래를 염려해서 혹은 과거를 두려워해서 가리고 삼가야 하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서로 존중하며 만나는 것을 두고 매너라고도 할텐데, 길고 오래 가는 관계는 이런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굳이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고, 앞으로 무얼하겠다는 포부를 밝히지 않고도 현재 모습만으로 새로운 존재감을 얻는 경험을 했다. 그것은 언제나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깨우침을 주었고, 그렇다면 그간 살아오면서 충분히 하지 못한 모험과 실험을 지금이라도 미루지 않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20대 청년기에나 했어야 할 고민이라고 할 지 모르나, 웬걸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그 질문 앞에 자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질문의 빈도가 줄었고, 집요함이 떨어졌을 뿐, 여전히 그 질문은 마음 한구석에 박혀서 가끔씩 우리를 성가시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치를 하고, 운동을 하고, 교육을 하고, 사업을 하며 어른이 되었다고 대강 둘러대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갖고 있는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들 뿐이란 점을 인정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거기에 사랑, 종교, 사회, 예술, 정치, 문화 따위를 끼얹어 보면 무슨 일이 생길까 궁금해졌다.
셋째, 과거는 예의를 갖추어 적절한 대우를 해주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과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를 몰라 당황한다. 가족, 연인, 직업, 실패, 성공… 자신의 과거와 맞대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과거의 어느 한 대목이 너무 치명적 상처로 남아서 그걸 은폐하거나 부정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선 삶을 살거나, 혹은 잘못 되는 것이 두려워 삶의 커리어를 완벽하게 관리하느라 너무 에너지를 소진해서 그 결과물이 꼴도 보기 싫은 애증의 낡은 트로피처럼 된 경우도 보았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나온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나 나도 내 자신과 마음의 평화를 이루지 못했다. 자책이든, 원망이든 과거의 인연들과는 어찌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무얼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찬찬히 삶을 돌아보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이 되었던 책과 사람, 가르침과 깨우침을 되새기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삶을 수습해 나간 이들의 경험도 들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는다. 누구나 자신의 고민이 제일 아프고 심각하다. 그러나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을 경쟁적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는 삶을 견뎌내기 힘들다. 배울 것을 배우고, 인정할 것을 인정하며 적절히 대우를 하되 삶을 늘 뒤돌아보며 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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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행본을 낸 것이 10년 전 일이다. 그 사이 내 인생에는 사건 사고도 많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공간으로 돌아다녔다. 이제는 내가 쓸 수 있고, 써야할 내용들도 많이 바뀌었다. 주된 독자층도 변할 것이고, 무엇보다 글쓰는 내 자신의 관심사와 생각이 많이 변했다. 과거의 독자들을 만족시켜 줄 수는 없을 것이고, 나는 새롭게 소통할 수 있는 벗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교감할 이들과는 아프게 상처를 뒤집어가며 새겨볼 교훈도 있어야 하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반대편에 있는 진실의 무게도 따져볼 것이며, 이것저것 다 잊고 맛난 것 먹고 즐겁게 마시자는 향유의 초대도 있어야 하고, 한번씩 땅을 구르며 웃을 일도, 바닥을 치며 울 일도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니 지난 10년 사이에 나는 이런 일을 두루 다 겪은 듯 하다. 아무 말도 못하고, 아무도 못 만나고, 아무 말도 들리지 않던 시기도 있었다. 존재 자체가 바닥으로 꺼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몇날 며칠을 멍하니 앉았다가 밥 먹고 잠만 자던 시기도 있었다. 미친 듯이 허위허위 걸어다닌 날도 있었다. 몸이 지쳐서 더 못나갈 만큼 걷고, 술 마시고 퍼져 자고, 그랬다. 내 사연을 풀어줄 수 있는 책을 찾아서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영화를 보다가, 드라마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주체할 수 없어서 울기도 많이 했다. 다 서럽고, 다 억울하고, 다 미안했다.
내가 지금 쓸 수 있는 글들은 내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맞대면해서 맺은 ‘잠정적 협정’의 결과물이다. 상황이 바뀌면 적절히 업데이트를 하고, 수정을 해야 한다. 주변에 긴급하게 인생의 궤도가 뒤틀린 사람이 있거나 지금까지 온 경로가 맞는 것인지 회의가 밀려오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쓰는 글에서 약간의 도움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남의 인생에 처방전을 남발하고, 지적질을 할만큼 여유롭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다. 다만 ‘삶의 방식’을 수립하기 위해 씨름하고 고투하는 누군가의 노력은 누구에게나 참고가 된다. 이 연재글은 그런 삶의 과제를 공유하는 이들간에 이야기를 주고받는 관계의 네트워크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초청장이다.
이 기획에 임하는 나의 일차적인 목표는 앞으로 3개월간 성실하게 글을 써내는 것이다. 매주 2회씩 발송한다면 총 24회의 원고를 생산하는 작업이 내게는 가장 중요한 현안이다. 그 원고들 안에 해리의 생각, 느낌, 관심사를 오롯이 담아보는 것이 목표다. 아마 거기에는 내 삶의 사건사고들, 내가 사는 경주의 숨은 면모, 논쟁적인 이슈들, 눈여겨 본 사람들, 인상 깊게 읽은 책 등이 마구 등장할 예정이다. 이런 연재글을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면서 읽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도 궁금하다. 최근에는 구독서비스가 여러 분야에서 정착되고 있고, 메일링 서비스에도 대표적인 사례들이 여럿 있다. 나도 소심하게나마 그 영역에 진입하는 셈인데, 그 대상이 십 수 명일지, 얼마나 멀리 퍼져나갈 수 있을지, 대체 어떤 이들이 반응했을지, 나의 개인적 역량을 뛰어넘어 더 재능 있는 이들을 이 플랫폼에서 만나고 소개할 수 있는 정도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새로운 미디어 채널에 대해서는 늘 관심이 많았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재미있게 진행해 보고 싶다.
여러분과 나의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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